붉은실의 인연, 거스를 자유
인생을 살다보니 생각보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생 대부분의 모든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만으로도 큰 틀에서의 평균치는 정해져있다. 부유한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 A와, 절대 빈곤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 B의 삶은 큰 틀에서 어느정도 예측가능하고 이건 개인의 힘으로는 거스르기 힘든 현실이다. 인종, 문화, 역사, 기후, 위도 등 대부분이 같은 조건에 있는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도 그렇다. 평생에 걸쳐 벌어들일 소득, 평균적인 교육 수준, 의식주의 질 등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 A의 인생과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 B의 인생은 아무리 개인의 능력치가 다르다 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남한 사람의 삶의 질이 높을 수 밖에 없다.
타고난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부모의 양육 방식으로 인한 성격 형성, 나고 자란 국가의 환경 등으로 인해 삶의 90%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부모의 가치관, 양육 방식으로 인한 나의 무의식, 감정선, 평생을 거친 사회화와 교육과정은 단단한 타일처럼 개인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기에 이 성장 환경이 한 인간에게 주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인간은 주변 환경을 내맘대로 택하여 태어날 수 없기에 고로 대부분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평생이 정해진다.
'성격이 팔자'라는 말이 있다. 매일 반복하는 습관들, 문제 대처 방식들, 방어 기제, 말투 등 대부분이 살면서 자연스레 주어진 것이지 내가 의식적으로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문득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왜 꼭 이런 결정을 내렸었지?' 싶은 일련의 선택 패턴을 찾게 되는데 이 때 성격의 위력을 새삼 체감하게 된다. 그럼 대체 내가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인간은 '성격'이라는 함장에 내 운명을 맡겨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래서 '성격이 팔자'라는 말이 나왔나보다.
나는 어려서부터 외로움이 참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절대적인 수치로 보면 지금도 그렇다) 요즘은 부쩍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내향적인 성향이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를 만나도 1:1로 만나지 큰 그룹으로 만나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과 깊게 친하고 북적북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이나 장소는 어쩐지 부담스럽다. 가끔 SNS상에서 왁자지껄 큰 그룹으로 친구들끼리 항상 어울리는 그룹을 보면 사실 부럽기도 하다. ‘나는 왜 저런 친구 그룹이 없지?’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저렇게 많지?’ 여러 부정적인 질문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꼬리물듯 나온다. SNS는 항상 자신의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주기에 눈에 보이는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내 주변인과 내 삶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최근 외로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제작년 여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보면서도 그렇고, 더이상 관리할 사람이 없어진 집을 보고서도 그렇고, 주변에 하나 둘 결혼하는 친구로 인해 자연스레 변하게 되는 내 친구 관계 변화도 그렇고.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내 마음의 변화는 어쩐지 낯설고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운명의 상대를 찾아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요즘들어 부쩍 부럽다. 어딜 가도 함께 하고, 항상 내편이 되어주고, 지지해주고,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는 최고의 파트너. 내 평생 여지껏 정말 마음이 맞는 연애 상대를 찾지 못했기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는 그런 뜨거운 사랑을 해봤는가? 요즘 더 나이가 먹기 전에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기도 하고, 여지껏 운명의 상대가 없었던 이유는 내가 연애 감정이 워낙 말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연애를 안해본것도 아닌지라 예전엔 꽤나 긴 연애도 했는데, 과거 만났던 엑스가 한번씩 다시 연락 올 때면 마음이 살짝 돌아서기도 하지만 ‘이 사람이 정말 내 운명의 상대인가?’ 생각하면…정말 현실에 타협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최근 이런 저런 사람을 많이 만나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랑 맞지 않는 옷을 이것저것 입어보는 느낌이다. 너무 찍어낸 공산품같은 옷, 너무 비싼 옷, 예쁘지만 불편한 옷, 재질이 까슬한 옷, 금방 헤져버릴 옷, 너무 평범한 옷, 못생긴 옷, 이상한 색의 옷, 마음에 들지만 이미 다 팔려 사이즈가 없는 옷. 한살이라도 어렸을 때는 별 생각없이 과감하게 입어보고(?) 하겠지만,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고려할 부분이 많아진다.
한가지 위안은 외로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잠시 주변을 돌아보면 문득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친구를 찾고, 연인을 찾고, 가족을 찾는다. 결혼하고 오랜 연인이 있는 사람도 결국 사랑이 필요하다. 계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싶고 누군가로부터 갈구 받고 싶어한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미주알 고주알 자신의 고민거리를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뿐 모든 커플은 나름의 문제가 있다. 물론 문제의 크기는 사람마다 상대적으로 모두 다르겠지만 성격 차이, 건강 문제, 섹스리스, 불륜, 잦은 다툼, 가족 문제 등 온갖 문제가 마치 운명처럼 따라온다. 사람과 함께하면 반드시 따라붙는 문제들이랄까. 하지만 수많은 문제를 안고도 헤어지지 않는 커플도 있고, 아무 문제가 없지만 별 스파크가 생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인연 역시 정해져있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인연이 빨간실로 태어날 때부터 이어져 있다는 중국의 설화가 왜인지 납득이 가는 요즘이다.
인간관계를 맺으며 얻는 행복이 인간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지만, 역으로 인간관계로 인한 불행이 또한 가장 큰 슬픔이다.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나쁜 일만 있지도 않기에 희노애락이라 하나보다. 인생사 모든 것은 좋은면이 있고 나쁜면이 있는데 연인 역시 그렇다. 만나면서 좋은면도 있지만 힘든면도 또한 있다는 것으로 솔로인 것에 대해 작은 자기 위안을 삼게 된다. 뭐하나 내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없는 이 세상 속에, 인연마져 이미 정해져있다고 하면 뭔가 허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인연의 빨간실 처럼 내개 올 사람은 정해져있을지 몰라도, 내가 누구를 만날지 안만날지, 같이 있을지 혼자 있을지 정도는 내게 허락된 아주 작은 자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외롭다고 혼자라고 나무 슬퍼하지 말자. 내게 허락된 작은 반항. 내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 우주를 향한 유일한 저항을 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