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생각들

한국식 합리성, 영국식 합리성 - 2편

단호박인줄 2023. 3. 7. 22:39

아마존 만세...but...

 
영국에서 악명높은 Royal mail. 우리로 치면 우체국인데 정말 이사람들 일부러 이러나? 싶을 정도로 서비스의 질이 낮다. 배송이 하도 오래걸려서 무슨 보따리 짐메고 배송 해주는 줄 알았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배송 추적이 안되는 택배가 있다니…이곳 로열메일은 가장 비싼 등급의 택배를 제외하고는 배송 트랙킹이 안된다. 꼴랑 배송 추적이 추가 돈을 내야 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라니 참 시대착오적이다. 빠르고 정확한 한국의 우체국 서비스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코로나가 처음 터지고 봉쇄로 온 국가가 난리일 무렵, 유일하게 작동한 서비스는 로얄 메일 배송이 아닌 Amazon이었다. 아마존의 물류 컨트롤에 대한 노하우 덕분인지 영국 전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었다. 철도도 멈추고, NHS 병원도 멈추고, 슈퍼도 멈추고 모든게 멈췄지만 아마존 만큼은 작동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으로 생필품을 살 수 있었다.
 
하 지 만! 그나마 낫다는 아마존도 한국과 비교하면 실수가 잦은편이다. 엉뚱한 집에 갔다놓는 것은 다반사이고, 갔다놨다고 뻥치고 배송 기사가 삥땅(?)치는 일도 있고, 하루 배송 건수를 채우기 위해 배송 완료했다고 거짓 보고를 한 뒤 며칠 뒤 슬며시 갔다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 같았으면 집 앞에 두고 가시라고 하겠지만 이곳은 집앞에 두는 순간 5분안에 누군가가 훔쳐간다. 그래서 반드시 수령자가 직접 받아야 하거나 대리수령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그냥 도로 가져가고 몇 번 반복되면 반품되어버린다. (그래도 지점에서 직접 수령해가라고 쪽지 붙여놓고 가는 Royal Mail보다는 백번 낫다) 

NHS건 로얄메일이건 철도건 뭐든 정시에 맞춰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없다보니 일단 하루의 일정을 느슨하게 잡아둬야 한다. 30분 단위로 쪼개 바로바로 타이트하게 하루 일정을 잡을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삶은 뒤로 제쳐두고 마음을 느슨하게 고쳐먹어야 한다. 한국사람이라면 천불 낼 일들에도 정작 이곳 사람들은 왠지 느긋하기만 하다.
 


Uncertainty Avoidance

https://youtu.be/20RHBoc0hYk?t=485

 
며칠전에 내가 좋아하는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아주 재미 있는 내용이 나왔다. 국가별 Uncertainty Avoidance 수치에 대한 사회연구결과인데, 불확실성에 얼마나 기피하는지를 국가별로 조사한 내용이다. 예기치 못하게 기차가 취소된다던지, 약속이 갑작스레 취소된다던지, 정해진 기간내에 답신이 오지 않는다던지 등, 불확실성을 얼마나 회피하려 하는지에 대한 수치이다. 예상대로 한국은 그 수치가 아주 높았다. 나만해도 하루 계획한 일과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화부터 올라오게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닌 일이지만 그 뒤에 일정까지 뭔가 어그러지는게 영 찝찝하고 개운치 않다. 아쉽게도 영국의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보다는 낮을 것이 분명하다 ㅋㅋ..

내가 만약 영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면 별 불만 없이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지 싶다. 어떤 예약을 하던 불시에 변수가 생길 수 있음을 항상 염두해 둘 것이고, 3-4시간 대기는 물론, 불가항력적으로 상황이 변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살게되지 싶다. 어후 생각만 해도 열불난다.
 
 


영국식 합리성

 
하루의 많은 것들을 불확실성에 놓고 살아야 하는 것을 익숙하게 살다보니 흔히 하게되는 말이 있다.
 
첫째로는 "It is good enough." '이정도면 괜찮고, 일단 합격이다' 라는 뜻. 그 합격을 주는 선이 어지간히도 관대한데 한국이었으면 난리났을 상황도 이곳에서는 아무런 컴플레인이 없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했을 때 박스가 훼손되서 왔다던지, 사실 누가 쓰다가 환불한 제품이 왔다던지, 부품이 한두개가 없다던지, 한국이었으면 절대적으로 컴플레인을 걸고 환불했을 것들도 이곳에서는 그냥 ‘Meh’ 해버리고 쓴다. 일단 환불이라는 절차 자체가 복잡할 뿐더러, 우리처럼 정확하고 빠른 배송 시스템이 없어서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번거롭다. 가끔 판매자 귀책이라도 내가 반품비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른데서 다시 구매를 한다고 해도 어차피 도긴개긴, 그게 그거다. 똑같은 상황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에 그냥 적당히 싼거 사서 쓰는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둘째로는 "It is what it is." '그냥 그런거다'라는 뜻. 불평하지 않고 그 자체를 받아들여 버리는 것. 인생에는 내가 다 바꿀 수 없는 부분들이 있고, 좋은점만 있을 수 없고,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도 있다. 국가나 개인이 모든걸 대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거니와, 준비한다고 해도 사고는 또 일어날 것. 그냥 그런거니 받아들이자...라는 것. 불평해봐야 어차피 내맘대로 다 바꿀수는 없다는 것인데 어찌보면 굉장히 불교적이네..?;;
 
영국 정치를 보면 평소 굉장히 전통, 절차, 격식을 강조하지만 특정 역치점을 넘은 사안에 대해선 엄청나게 과감하고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는데, 대표적으로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때 나왔던 백신 비상 허가해버린 것과 결국 브렉시트를 국민투표까지 부쳐 노빠꾸로 진행해버린 것을 들 수 있다. 임상을 철저하게 넘지 않은 백신은 쓸 수 없다고 모든 국가들이 우왕좌왕 할때 검증조차 되지 않은 백신을 그냥 허가해버렸다. 그게 어떻게 법치국가에서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반대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냥 특정 역치점을 넘은 위급성이면 굉장히 합리적으로 계산기 때려봐서 그냥 실행한다. 이건 은근 책임을 지지 않는 문화도 한몫 한다고 보는데, 정치인들이건 어디건 굉장히 맷집들이 쎄서 어지간히 욕을 먹고 지탄 받아도 그냥 어쩔 수 없었다 unfortunately 등등 했다 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문화가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식 합리성

 
내가 평소 참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나마 이거라도 있으니~" 라는 말인데, 이 말이 붙는 99% 상황은 사실 합리화 내지 면피성 멘트라고 생각한다. 보통 "그나마" 붙어있는 "이것"은 문제 해결에 1도 도움이 안되고있는 상황이 뻔한데, "이것"이라도 없었으면 더 심했을테니 다행이다, 라는 논리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도는 뭐 그럴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나마" 존재한다는 이유로 제대로된 해결책을 만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면피성 합리화로, 이 "그나마 이거라도 있으니~"를 시전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추운 겨울에 얇은 반바지를 입고 나가서 "그나마" 이 바지라도 입고 있으니 덜춥다고 하는 꼴이랄까. 그러면서 계속 반바지를 입고 오들오들 떤다. 추우면 두꺼운 기모바지를 입는것이 해결책이다. 적극적인 행위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소극적인 합리화의 시도라고 보면 될것 같다. 이게 또 관성이 강해서 한번 합리화가 정해지면 수정하는게 쉽지 않다.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 예의 지국. 예절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격식을 따지고, 절차도 중시하고, 체면도 중시하고, 눈치도 많이 보기에 어떤 일처리를 하던 거쳐가야 할 단계들이 많다. 한국식 합리성을 가끔 보다보면 실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사실 구색만 맞춘 "합리화" 해결책을 달아놓는 붙여놓는 경우가 많다. 워낙 눈치도 많이보고 주변 변수를 많이 따지다보니 정작 문제 본질에서는 멀어지고 적당한 구색을 맞추다보니 그렇게 되는것이라 생각한다. 그 예로는 

 

1.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가 있는 모바일 기기가 대중화 되면서 몰카 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카메라를 찍을 때는 셔터음이 무조건 나는 대책이 나왔고 초기에는 반짝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이후로 "그나마" 이 법이 있기 때문에 몰카가 이정도로 유지되는것이라 굳게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그 어느 몰카 범죄자가 기본 카메라로 소리를 찰칵 거리며 몰카를 찍을까. 당연히 무음카메라로 찍는다. 카메라 안경, 카메라 펜 같은 소형 기기가 판을 치는 마당에 스마트폰 찰칵 소리가 대체 무슨 몰카를 막아줄까. 순수한 의도로 데일리 용도로 카메라를 쓰는 99.99999% 사람들만 불편을 겪는다. 다행인건 이제 해외로 나가면 자동으로 설정이 바뀌어서 해외에서는 무음카메라로 바뀐다. 박물관에서 어글리 코리안 소리 듣지 않아도 된다. 
 


2. 코로나 이후 실내 마스크

 
마스크의 효용성에 대한 갑론을박은 판데믹 초기부터 있어왔다. 여러 사람 마다 다 제각각 주장은 있을 수 있어도 내가 들은 설명 중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이것이었다. '코로나에 마스크가 과연 효과가 있냐 없냐는 오미크론 변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바이러스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전파력을 지니는게 아니고 바이러스마다 천지차이이다. 바이러스의 크기도 다르기 때문에 공기중에 떠다닐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오미크론 변이 이전의 코비드19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높지 않아 에어로졸 상태로 공기중에 떠다닐 수 없었고, 직접 비말을 통해 전달이 되어야 했으므로 마스크로 상당히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 이후로 전파력이 배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공기중에 떠다니며 에어로졸 상태로 전이가 가능하게 되었다.’ 한 공간에서 숨만 쉬어도 바이러스가 공기로 떠다니면서 전염될 수 있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뀐 셈. 더군다나 이미 일상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식당도 가서 다 밥먹고 공공장소도 가는 마당에 무슨 소용이랴. 식당에 버글버글 앉아서는 함께 떠들고 정작 밖에 나와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까페에서 앉아있을 때는 벗어도 되고 서있을 때는 마스크를 써야한다. 무슨 벌칙 게임인가 이게?  "그나마" 걸을때 조금이라도 막지 않겠어?라는 관성적 생각이지만 실외에서 걷다가 코로나 걸릴 확률은 벼락맞을 확률이지 싶다. 이미 마스크는 방역의 본질에서 예전부터 멀어졌고, 예절과 눈치의 영역으로 옮겨가서 이른바 ‘눈치보여서’ 벗을 수가 없다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혹은 딱히 불편함을 모르겠으니, 나만 튀고싶지 않아서 그냥 쓴다는 군중심리도 한몫 했다.
 
얼마전에 배스킨라빈스에 친구랑 함께 들어갔다가 내가 마스크를 어디 주머니에 넣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찾고 있었는데,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굉장히 다급하게 마스크 미착용하면 출입이 불가하다고 나가달랜다. 그래서 친구만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데 밖에서 실내를 보니 앉아서 아이스크림 먹는 사람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안꼈다. 도중에 내가 마스크를 안쪽 주머니에서 찾아서 매장으로 결국 들어갔는데, 아이스크림을 다 사고 매장에서 앉아서 먹고 갈껄 그랬다. ㅋㅋ 서있을 때는 꼭 써야하고 (점원이 막 불안해하는게 피부로 느껴졌다, 정말 마치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앉아있을 때는 벗어도 되고...관성적 합리화이다. 
 
 

3. 간통죄

 
신기하게도 이 법 만큼은 관성을 깨고 최종적으로 폐지가 되었다. 이 법이 없어지기 까지 오랜 논쟁이 있었지만 이 법 덕분에 "그나마" 이정도 선으로 불륜이 통제가 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눈에 안보이는거지 통제가 되는거라 믿는것은 착각 아닐까). 과연 국가가 개인의 이불 속까지 들어가 형사처벌을 한다는 것이 과연 합헌 하느나에 대한 법리적인 논리에 힘이 실려 폐지가 되었다. 이 법이 없어지면 모두가 자유를 얻은듯, 소돔과 고모라처럼 헬게이트 열려 모두 불륜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역시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어째 비약이 심하다 ㅋㅋ
 


합리화라는 것 자체가 사실 무의식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패턴화이다. 어지러이 늘어져 있는 정보들을 나름의 정해진 순서대로, 정리를 해나가서, 내가 아는 정보와 가치관에 일치하게끔 틀에 맞춰 찍어내는 과정이 바로 합리화이다. 단어가 내포하는 느낌 때문에 이 '합리화'는 대단히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무의식이 만든 정보 편향'에 가깝다.
 
각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합리화는 복합적인 이유로 오랜시간 켜켜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 특수성이 문화가 되는 것이고, 다른곳과 차별화되는 고유성이 되는 것이리라. 합리화 과정을 찾아내어 내 머릿속에 정리해놓다보니 영국 살며 여러 화딱지 나던 지점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 it is what it is...그냥 그런거지 뭐 ㅋㅋ..이런 합리화 없이 어떻게 삶을 살겠어? 그래도 "그나마"는 싫다. 이말로 시작하는 모든 논리는 딱 듣기싫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