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여행 (2023.Feb) - 1일차 (샹그릴라 호텔, Second floor cafe, Pawnshop)
4박 5일의 짧고 굵은 대만 타이페이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타이페이는 예전에 여러번 가보기도 했고, 도시 안에서는 크게 할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올 해 2월까지 전년도 연차를 모두 소진해야 했었기 때문에 남은 연차 탈탈 털 겸 기분 전환도 할 겸, 가까운 대만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비행기 표는 제주항공 대략 39만원 정도에 결제 (사실 대만 치고는 꽤 가격이 있는편이지만 포스트 코로나에서는 쩔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해외 호텔 바우쳐를 써야했으므로 이참에 Flex 하기로 결정!! 호텔은 샹그릴라 파이스턴 호텔로 선택했다. 여행 메이트는 언제나 그렇듯 'Chris'. 언제든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참으로 감사하게 된다.

대만에 무사히 도착하고 마침 부산에서 출발하는 'Chris'를 타오위안 공항에서 만나서 함께 대만 시내로 들어가는데,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보았다. 항상 MRT를 타고 갔었지만 이번에 예약한 샹그릴라 호텔이 지하철 역과 거리가 꽤 되었기에 호텔 앞까지 바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기로 했다.
구글맵을 조회해보니 타야할 버스가 친절히 나온다. 타오위안 공항 도착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을 내려가니 공항 리무진이 터미널로 바로 연결되었다. 예전에는 이 구글맵 없이 대체 어떻게 여행 다녔는지 몰라....

차가 좀 막혀서 생각했던 것 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호텔 바로 앞까지 리무진이 가서 편하게 호텔까지 올 수 있었다. 다안 지구라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거리가 깔끔하고 좋은 카페, 레스토랑이 많은 것을 보니 꽤나 비싼 동네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 호텔의 컨셉이 이 동그란 로비 같았는데, 이 거대한 동그란 기둥(?) 안으로 총 6대의 생긴 엘리베이터가 6대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원형에 맞춰 제작되어서 부채꼴로 생겨서 신기하다. 대리석으로 마감이 되어있는데 공간이 동그랗게 되어있다보니 안에 발자국 소리가 희안하게 하울링 된다.

타이페이에 도착 하자마자 며칠 전부터 간당간당하던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강력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아침 일정부터 꼬여서 시간 부족으로 라운지도 들르지 못해 점심도 못먹은 상황에서 에너지가 떨어지니 오한까지 오기 시작해서 뭐라도 먹자 싶어 가까운 까페를 검색했다.
Second floor cafe 라는 곳이었는데 따뜻한 커피라도 마시면서 요기만 해야겠다 싶어서 찾았는데, 생각보다 햄버거가 굉장히 거창하게 나왔다. 먹는 중에 식은땀이 줄줄 나면서 몸이 영 좋지 않아 결국 반도 먹지 못하고 남기고 나왔다. (아까비...)
https://goo.gl/maps/E3JJQD1J9uHbZtEu9
Second Floor Cafe Dunnan Restaurant · No. 14, Lane 63, Section 2, Dunhua S Rd, Da’an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6
★★★★☆ ·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www.google.com
2층 구조로 된 집이었는데,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가격이 꽤 나가는 집이었다. 커피와 햄버거를 시키니 대략 2.6만원 정도.

대만 특징이 어느 음식점을 들어가나 메뉴가 정~~~~~말 많다. 새까맣게 적힌 한자에 눈이 아득해지고 그냥 간판메뉴라도 정리를 딱 해두면 관광객 입장에서는 참 편하겠지만, 뭔노무 메뉴가 그렇게 많은지 대체 뭘 시키면 될지 모르겠다.
직원도 영어를 전혀 못하는지라 한참을 헤메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슬쩍 와서 메뉴 주문을 도와주었다. 대만은 모르는 사람도 격의 없이 말걸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잔정이 살아있는 동네같다. 사람들도 굉장히 릴렉스 되어있고, 마음의 벽이 없는, 어찌보면 순수함이 아직 살아있는 그런곳 같다. 한국도 2000년대 초반만해도 이런 릴렉스함이 있었는데…언제부터 이렇게 팍팍해졌을까?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호텔로 얼른 복귀해서 감기약 한알을 먹고 한숨 잠을 청했다. 역시 구스 침구와 5성 호텔의 위력이었을까, 자고 일어나니 몸이 훨씬 나아져서 술 한잔 걸치러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왔는데 방에만 있을수는 없다. 투혼 발휘...)

Chris 의 오랜 친구가 대만에 살고 있어서, 이 친구가 로컬들만 아는 찐 맛집으로 저녁 식사를 초대해주었다. 대만식 신선로(?)같은 샤브샤브와 꿔바로우, 볶음밥을 시켜줬는데... 다른건 다 아는맛이지만 대만식 샤브샤브는 살짝 새콤한 맛이어서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항상 그렇듯 찐로컬 음식이 입에 맞기까지는 최소 3-4번은 먹어야 입에 붙는다. 김치찌개도 사실 시큼한 맛이라는걸 생각하면, 이 음식도 입에 제대로 붙기 시작하면 진짜 맛있지싶다.
호텔로 돌아가기도 시간이 애매하고, 근처 괜찮은 바에서 한잔 걸친 뒤 타이페이에서 요즘 가장 핫한 The Pawnshop이라는 클럽을 가게 되었다. 매주 다양한 DJ를 초청해서 다양한 컨셉의 음악과 컨셉의 밤이 펼쳐지는데 굉장히 세련되고 힙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만은 여러모로 특이한 동네다. 마치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보던 나오는 중간지대, 치외법권의 중립국 지대 같은 느낌이 있다. 동성결혼도 가능한 아시아 유일의 국가인 만큼 사람들이 성 관념에 엄청 관대하고, 이른바 Chill 한 감성을 즐길 줄 아는 나라이다. 중국과 같은 한족이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나라이고, 섬나라이다보니 서로 조심하고 예의 바르고 깔끔하고 눈치를 좀 보는 이른바 섬사람 감성이 강한 나라이다. 국공내전으로 국민당 사람들이 본토에서 피난와 이곳에 자리잡은 이후로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대만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점점 키워온것 같다. 대만섬에 오랫동안 살던 폴리네시아 인종의 원주민들과 + 청나라 이전부터 알음알음 넘어와서 이주해온 한족 + 국공내전 이후로 섬으로 도피해온 한족이 섞여 현재의 대만인이라는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본토 중국인과는 꽤 다른 외모의 부리부리+까무잡잡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나도 대만에 대해서 정확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들은 정보와 내용을 정리하자면…(물론 틀릴 수도 있다.)
현재 대만과 정식 수교를 맺은 나라는 이제 단 14개 국가뿐이고, 그나마도 힘없는 작은 섬나라 같은 곳들 뿐이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가 14개 밖에 없다는 소리인데, 또 정작 대만 여권 파워는 나쁘지 않다. 유럽이나 미국 등 무비자로 갈 수 있는 국가도 많고 전자여행비자가 되는 곳도 많다. 국가가 아닌데 여권이 있다?? 여권으로보면 국가로 인정한다는 소리지만 일단 외교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적 눈가리고 아웅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히 국가이나 국가라 부르지 못하고, 여권도 인정하고 무비자까지 되지만 대사관이 없고, 사실상 대사관이지만 대표부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고… 쉬쉬~~ 눈가리고 아웅.
대만이라 하면 중국과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만의 대중 수출 비중은 42%에 달해서 사실상 중국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특히 반도체, 금융 몰빵 테크를 타고 있어서 굉장히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GDP를 가진 국가이지만 반도체, 전자기기제조, 금융, 위스키, 자전거 등 몇개 분야를 제외하면 규모가 미미해서 경제 분야간 격차가 상당하다. 의외로 금융이 발달했는데, 국공내전 당시 배타고 대만으로 피신해올 때 소수의 사람들만 배에 탈 수 있었고, 이른바 돈없는 사람은 한사람도 태우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대대로 엄청난 부를 가진 가문이나, 의사 변호사 거상 등 부자들만 배에 태워 대만으로 넘어와서 금융업을 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아이폰 조립 회사로 많이 알려져있는 폭스콘도 사실 대만 자본으로써 거의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이미 중국과 대만은 경제적으로는 한몸이다. 정치적으로는 중국과 강한 대립을 하고 있지만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부부와도 같은 관계를 지니고 있어서 마치 몸통은 붙어있으나 머리는 싸우고 있는 꼴이다.
중국과 대만이 분단되어있는 것을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어있는 것과 비교하고는 하는데, 사실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일단 남한과 북한은 교류가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로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큰 교류 없이 거의 남남으로 여지껏 살아왔지만 중국과 대만은 일단 티격태격 할 지언정 경제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이다. 또 외부에서 보기에는 대만이 독립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독립을 주창하던 차이잉원이 선거에서 져서 다시 국민당에게로 수권당의 지위가 넘어간 것만 봐도 그렇다. 진시황 대륙 통일 이후로, 중국인에게는 한 나라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 도덕적 ‘선’이므로 ‘통일‘이라는 것은 상당수 대만사람에게도 굉장히 중요하다. 다만 대만이 주도하는, 자유중국으로써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데…사실 가능성이 거의 없으나…뭐 그 방법을 굳게 믿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은 그런 통일 방식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당연히 인지하고 차라리 이럴거면 독립을 하자는,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차원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 쯤으로 나는 이해했다.
워낙 국가 분위기가 자유롭고, Chill 하게 살아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도 많다. 그런 자유분방함을 찾아 히피나 서핑 좋아하는 백인들이 대만으로 많이 이주해온다. 그래서 어딜가나 백인, 흑인 외국인들이 꽤 많은데, 단기 여행자들도 있으나 이곳에 장기로 거주중인 외국인들이 많다.
그래서 바나 클럽을 가면 이곳이 대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다. 분명히 중국적인 색채가 있는데도, 백인 흑인 황인 가릴것 없이 섞여있고, 다양한 성적지향성을 가진 사람이 한데 섞여서 아무런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가 마치 아포칼립스 이후의 대도시를 그려놓은, 공각기동대나 얼터드 카본에서 그려지는 미래 아포칼립스 도시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을 참 많이 느낀다. 모든게 효율적이고 균일하고 일관된 한국. 그 장점이 어마어마하지만 반대로 단점도 존재한다. 이 한국인의 특성이 빠른 경제 성장의 비결이 되기도, 반대로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는 럭셔리 업계, 럭셔리 카 시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고는 한다. 하지만 그 팬시함을 좋아하는 성질 덕분에 전세계인이 열광하는 최첨단의 유행과 K팝, 드라마,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검소하고 철학이 꽃핀 독일에서 K팝이 나올 수 있을까? 어찌보면 하나의 특질로 여러 성질이 나올 뿐, 좋고 나쁨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완벽한 세상은 없으니까, 균형감이 최선일뿐.
전세계에 PC 바람이 부는것을 단순히 뉴스로만 접하면 그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잘 와닿지 않는다. 내가 직접 체험할 때에만 비로소 진짜 이해할 수 있는데, 타이페이는 아시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넓은 다양성을 지닌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다양성 이라는 것…한국에는 전혀 없는 것이라 겪어볼 일이 없지만 가까운 대만에서 이런 다양성을 접하니 재미있다. 낮은 임금만 아니라면 이곳에서 잠시 살아보는 나의 모습도 상상해보게된다.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