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참 어렵다. 대한민국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는 (최소한 젊은 세대는) 평생 영어로 고통 받는다. 모국어도 아닌 이 언어에 왜 본인을 열등감과 울렁증의 수렁 속에 평생 채찍질해야하나, 조금 억울하다. 영어는 (최소 대한민국에서는) 하나의 언어라기보단 단순히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써,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단순히 점수를 위해 따는 공부로 전락해버린, 그 자체로 그냥 하나의 경쟁력(?) 측정 도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쩌랴, 불평해봐야 소용없다. 일단 공부해서 배워야하지만 배울 수록 어렵고, 쓸 수록 어렵고, 끝이 없다는 것을 이 영어 공부하면서 많이 느낀다.
사실 한국어도 어렵다. 거꾸로 영어 모국어 화자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만큼이나 어렵다. 단어들의 어순이 이렇게나 자유롭게 뒤죽박죽 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소리나는 대로 쓴다면서 설거지는 설겆이가 아닌데, 미닫이는 미다지가 아닌 이상한 차이. 시간을 표현할 때도 시간 부분은 1시 2시(일시, 이시)가 아닌, 한시 두시 세시로 고유어 기수사를 쓰는데, 분 부분은 30분, 58분 등 한자어 서수사를 사용한다. ‘하나’가 갯수를 나타내는 ‘개’와 합쳐질 때는 줄임말로 ‘한 개’로 변형, ‘셋’이 ‘개’와 합쳐질 때는 ‘ㅅ’이 탈락하여 ‘세개’로 되는 등 제멋대로 변하는 변수들이 많다. 다만 영어가 국제 표준이라 영어권 화자가 한국어를 배우는 상황이랄게 대개 본인이 한국에 살면서 겪는 불편함 때문에 한국어 회화를 익히는 정도이기에 우리처럼 어릴때부터 직장까지 시험을 달고사는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니지 싶다.
우리에게 영어가 왜이렇게나 어려울까, 생각해보면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언어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단어가 다르다던지, 문장 구조가 다르다던지, 하는 피상적 차원을 넘어서 언어를 배경으로 하는 그 기초적인 세계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 역사, 근원부터 다르다. 마치 윈도우와 매킨토시의 차이쯤으로 볼 수 있는데 겉에서 보기엔 작동하는 방식이 엇비슷해 보이지만, 더 깊이 소스를 파고들면 작동방식, 순서, 기초 언어 등 그 뿌리부터 완전히 다르다.
언어는 그 문화권의 세계관을 그대로 담은, 설계도와 같다. 동시대 인구는 물론이고 수천년부터 수만년동안 대대로 빚어온 언어.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문화권의 멘탈리티를 그대로 흡수해야만 진정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중국어나 일본어의 경우 많은 부분에서 우리말과 유사하고 공유하는 세계관이 부분이 많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금방 잘 할 수 있지만, 영어는 다르다. 한국말을 영어로 직역하려고 하니 혀가 꼬이고 말이 나오지 않고 영어 울렁증이 더욱 생기게 된다. 내가 느끼기에 최소한 우리말 문장의 40%는 영어로 100% 직역은 불가능하고 어느정도 의역이 필요하기에 영어식 세계관을 머리에 새로 써내려가야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지고 원하는 표현을 제대로 영어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된다.
언어라는 것은 많은 레퍼런스, 상황 맥락을 포함한다. 대표적으로 코미디가 고맥락 문장이고, 분명히 다 이해해도 모국어 화자는 웃되 외국인은 전혀 웃지 않는 이유가 그 문장을 깊이 이해하는데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영국에 사는 내 싱가폴 친구가 유튜브에 있는 먹방 컨텐츠를 공유하며 구글 번역된 자막이 아주 재미있다며, 왜 이렇게 엉뚱한 얘기가 나오는지 물은 적이 있다. 먹방 유튜버가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하는 유튜브였는데 4-5개나 되는 많은 라면을 끓이면서 ‘호시탐탐 하이에나들 조심‘ 이라는 자막을 넣었고, 자동 번역된 영어 자막에도 ’Beware of hyena’로 표시되었다. 그 먹방 유튜버의 의도는 ’이 맛있는 라면을 호시탐탐 노리는 주변인들, 즉 하이에나같은 친구나 가족들이 라면을 뺏어먹지 않게 조심‘ 하라는 의미로 썼지만 영어권 친구가 이 자막을 봤을 때 떠올린 이미지는 ’웃는 하이에나‘였다. 하이에나의 특유의 웃는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기에 라면을 끓이는데 왜 갑자기 ‘Laughing hyena’가 등장해서 웃지? 싶어서 그 친구가 나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아 이거 너무 재미있다’ 싶어서 내 친한 남아공 친구에게도 동일한 영상을 보여주며 하이에나라고 하면 무엇이 떠올랐냐 물어보았다. 답은 역시 동일하게 ‘웃는 하이에나’였다. 언어라는 것이 이렇게 알게 모르게 많은 레퍼런스를 공유하는, 맥락을 가지고 있기에 영어식 세계관을 내 머리에 확장해나가야 말이 트이고 언어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다.
한국에서 긴 세월동안 지긋지긋한 영어로 씨름하면서, 영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영어로 씨름하면서, 취미로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따며 느낀 점과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를 조합하여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개인적인 견해도 많으니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첫째는 두 언어의 대표적인 차이로 첫번째는 영어는 일단 명사 위주의 언어이고, 한국어는 동사 위주의 언어라는 점이다. 모자는 '쓰는 것', 신발은 '신는 것', 바지는 '입는 것', 귀걸이는 '차는 것', 목도리는 '두르는 것', 장갑은 '끼는 것' 등 영어로 하면 'Wear' 하나로 모두 통칭될 것들이 모두 제각각 다른 동사 표현으로 형형색색 세분화되어있다. (Wear a hat, wear earrings, wear shoes…) 반면에 영어는 명사 표현이 정말 많은데 거의 모든 상황별 명사 단어를 최소 한개씩은 만들어뒀다. 그래서 동의어, 유의어가 그렇게나 많다. 예를 들어, ‘논쟁’이라는 단어도 argument, controversy, dispute, embroilment, quarrel 등 수많은 동의어/유의어가 있어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당황하게 되는데, 문제는 대개의 경우 이 동의어가 정확하게 쓰이는 상황이나 페어링 되는 동사들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미세하게 상황이나 톤,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나 비슷한 유의어가 많은 것이다. 영어는 정확하게 핀포인트 된 영어 단어 하나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명사 중심의 언어이기 때문에 단어를 모르면 영어의 진도가 나가지 않고, 하루에 100-200개씩 단어를 무식하게 외우는 방법이 어느정도 꼭 필요하다.
둘째는 조어 능력의 차이이다. 동북아는 한자를 쓰기 때문에 자유로운 조어가 가능하다. 사실 이 한자라는 것이 미친 압축률을 자랑하는 문자이다. 이미 한자 한글자로도 의미를 지니는 엄청난 압축률에 더해 두세가지 한자를 조합하면 단어 완성, 그 순서를 바꾸는 것 만으로도 새로운 단어가 되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만들어 써도 듣는 사람이 어느정도 의미를 유추해서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는 문자이다. 처음 한자를 배울 때는 한글자 한글자 외우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럽지만 일단 한자를 1000자 정도만 외운다면 그 다음부터는 점점 일사천리로 쉬워지기 시작한다. 처음보는 단어일지라도 그 낱개의 한자의 의미를 안다면 단어의 뜻을 유추할 수 있고, 연상 작용으로 인해 단어 기억도 쉬워진다. 영어도 특정 접두어 접미사들이 의미들을 지녀서 어느정도 규칙성을 지니고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머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cap이 붙는 단어는 일단 머리라는 성질에서 가지치기를 한다. Capital은 수도(한 나라의 머리), Captain은 대장(조직의 머리) , Cap은 야구모자, Decapitate는 참수(머리를 de, 없앤다), Capitulation은 항복(머리를 내놓다)와 같이 규칙성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를 처음 들을때는 그 의미를 유추하기란 쉽지 않고 접두어, 접미사 설명을 듣고 난 뒤에기억하기 쉽게끔 도움이 되는 정도이다.
셋째는 글자에 있어서 영어 알파벳은 표음문자,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혼자 방구석에서 책을 보고 공부하는 현대인의 공부 환경상 영어 공부하기에 한가지 허들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영어는 소리를 문자로 적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100% 정확할 수가 없고 얼추 눈치껏 아는 소리를 알파벳으로 치환해서 적어놓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 같은 단어를 지역마다 다르게 발음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서도 발음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미국식 기준) 알파벳 i 만해도 Vitamin을 보면 <바이타민>첫 i는 <아이>로 발음되지만, 두번째 i는 <이>로 발음된다. Circle을 보면 이 경우에는 <써클>, <어>로 발음이 되고, 명사형 Miracle 은 <미라클>로 <미>로 소리나는 반면 형용사형 Miraculous 는 <머래큘러스>로 <머>에 가깝게 소리난다. 반드시 소리를 알아야 정확하게 학습할 수 있는 것이 영어이고,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해야하는 상황에서 참 쉽지 않다.
넷째, 영어는 ‘구어체’나 ‘문어체’냐에 따라 문장의 구성이 많이 다른데 일단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하나의 독립된 언어 유희로써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약간은 시적이기도 하고, 간접적인 표현으로 일종의 게임과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 영어식 글쓰기 표현의 문장 구조나, 서사 구조가 어느정도 정해진 틀이 있기 때문에 영어 모국어 화자도 이 영어 글쓰기에 대해 만큼은 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받는다. 구어와 문어가 차이가 크다는 점을 간과하기에 회화에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던지, 글쓰기에 어색한 구어체 문장을 넣는 일이 많다.
영어의 구어체는 상당히 압축률이 낮다. 간단한 단어를 여러개 조합해서 쓰는 방식으로 숙어를 많이 쓰지, 복잡한 어휘를 일상 구어에서 많이 쓰지는 않는다.
- Come down with ~ : (~로 인해) 상태가 안좋다. 병에 걸리다.
- Come up with ~ : (~을) 생각해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다.
- Come by : (가는길에) 들르다.
- Come across : (우연히) 마주치다.
- For good : 영원히 (부정적인 의미에서)
- Go to : 늘 찾는, 손 쉽게 찾는, 항상 첫번째 선택.
- In one go : 일시불
- I’ll walk you down with you : 너 가는데까지 마중 나가줄게.
이런 식으로 간단한 동사들을 여러개 묶어 사용하는 식으로 수많은 구어체 표현이 생겨난다. 흔히 보는 미국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처음 보는 숙어 표현이 현란하게 등장한다. 요즘은 숙어 표현 책도 많이 나와서 참조할 것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다섯째는 맥락의 비중이다. 한국어는 high context 언어(고맥락 언어), 영어는 low context 언어(저맥락 언어)로 분류되는데 한국어의 어순 자체가 뒤죽박죽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눈치껏 알아듣는, context 즉 상황을 따져 찰떡같이 알아듣는 부분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나 간다고 말했어?” 라고 할 경우 대략 “내가 (그곳에) 갈 것이라는 걸 (그에게) 말 했어?” 쯤을 상황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자연스레 생략하는 부분이 많은데, 이걸 영어로 한다면 아주 난감하다. 대체 무엇을? 누구에게? 말했다는 말인가? 대번 의미가 통하지 않게 된다.
영어 문장은 일종의 코딩과 비슷하다. 눈치 없는 컴퓨터 언어랄까. 뭐든 정확히 짚어서 누가 왜 무엇이라는 문장적 요소가 정확히 서로를 가리키고 빈 곳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영어에서 주어를 생략하면 엄청 이상해진다. 영어 문장을 죽 놓고 보면 i가 엄청 많은데, 어차피 내가 말하는 상황이니 뻔히 생략할 수 있을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 주어는 생략할 수가 없다. 한국인들이 아주 어려워하는 관사, a와 the도 마찬가지인데 매 명사마다 이 관사를 지겹도록 꼭 넣어줘야 한다. 넣어주나 안넣어주나 의미는 똑같아 보이지만 결국 이 관사라는 것이 뒤에 올 명사를 가리키는, 일종의 포인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포인터 없이는 문장 내에서 누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코딩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정말 눈치 없이 100% 정확하게 얘가 얘고 쟤가 쟤야 라고 완벽하게 서로가 가리키고 매칭 되어야 오류없는 코딩 문장이 되는데, 영어 문장이 딱 그렇다. 즉 Context를 고려해서 읽는 사람이 알아서 눈치껏 알아듣는 이 상황적 요소가 아주 적은 언어이다.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점을 꼽자면 사실 끝도 없다. 오히려 공통점을 찾는 것이 빠를 것 같다. 구대륙 서편 끝에 위치한 영국과 구대륙 동편 끝에 위치한 한국. 문화적 교류도 당연히 없고 기후도 역사도 전혀 딴판이기에 공통점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이 미국의 영향으로 인해 영어 영향권에 있는 만큼, 과거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많은 것이 중국어와 한자의 영향권에 위치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순 우리말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한자어나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어 왔는데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에 걸맞는 삶의 형태가 있고, 그 형태에 맞는 언어가 있는 것이기에 무리하게 순 우리말로 억지로 말을 대체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대체해서 얻는게 무엇인가? 일단 안부를 묻는 가장 대표적인 ‘안녕’이 벌써 한자인데 이걸 순우리말로 바꾸면 대체 전국민은 이제 새로운 언어를 개발해서 새로 또 공부해야하나? 모국어를 새로 개발해야하나?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순우리말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언어이고 한자어는 외래어라는 생각…짙은 프로파간다의 향기를 느낀다.
이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잡썰 & 개똥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의 세계 3️⃣ - 말과 글 (0) | 2023.02.16 |
---|---|
언어의 세계 2️⃣ - 차용어 (한국어 속 한자어, 영어 속 프랑스어) (0) | 2023.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