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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_생각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by 단호박인줄 2023. 2. 20.

대학교 1학년 때 그리스 로마 신화 교양 수업을 들은적이 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수업을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당시 수강 신청에 폭망해서 남아있는 선택지가 몇 개 없었고 그나마 이 수업이 괜찮아보여 08학번 동기들과 우르르 수업을 들으러 갔다. 헌데 듣다보니 생각외로 재미가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이야기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티탄족의 후예로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올림포스의 신들과는 반대 진영에 있는, 이른바 적 관계에 놓여있었다. 당시 티탄족과 올림포스 신족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최종 올림포스 편이 승리하였지만, 티탄족이었던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올림포스 편에 투항함으로써 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위치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을 받고 인간을 창조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에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다. 후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신들의 전유물, 불을 인류에게 몰래 전해준 죄로 매일 재생하는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Prometheus, 앞을 나타내는 접두어 Pro와 Epimetheus 뒤를 나타내는 접두어 Epi를 보면 두 인물의 특징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생각하는 자, 프로메테우스는 모든지 앞서 미리 생각하는 선지자로써 이른바 예지능력을 지녔는데, 뒤늦게 생각하는자, 에피메테우스에게 자신의 예지력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충고를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항상 뒤늦게 생각하는 후회꾼인데 이 에피메테우스가 바로 그 유명한 판도라의 상자의 주인공, 판도라와 결혼하였다. 그 대표적 경고가 '판도라와 결혼하지 말라'였지만 항상 뒤늦게 생각하는자, 에피메테우스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판도라와 결혼해서 추후 제우스의 계략에 넘어가게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각 등장 인물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습성을 마치 제 3자의 시선으로 관찰한 다큐멘터리처럼 담고 있어 그리스 신화를 통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지, 또 나도 결국 인간이라는 종객관화(?)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프로메테우스나 에피메테우스 모두 우리 모두 내면에 존재한다. 현명하게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준비할 때도 있는 반면, 이미 지나간 일을 보고 후회하며 앞에 다가올 미래에 전혀 대비하지 못할 때도 있다. 과거를 돌아볼 때 나는 에피메테우스가 되고, 미래의 상상할 때 나는 프로메테우스가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살며 인생에 후회가 하나 둘 늘어간다. 인생 살면서 후회없이 모든걸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존재할까. 내가 약해질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마다 문득문득 감기처럼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 후회. 그런데 내 안의 후회를 찬찬히 살펴보다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후회는 혼자 오지 않고 항상 세 자매로써 함께 찾아온다. 후회, 자기 혐오, 자기 불신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나를 가두는 후회, 과거의 나를 지탄하는 자기 혐오, 미래의 나를 깎아내리는 자기 불신. 과거 선택을 후회하다보면 그 선택을 내린 과거의 나를 싫어하게 되고, 내 능력까지 의심하게 되어 자기 불신으로 이어진다. 즉 후회의 결말은 과거의 내가 미워진다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바보같고,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나 때문에 불만족스럽기에 모든 화살을 과거의 나에게 돌리는 것이다.

나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내 인생 최대의 풍파를 겪으며 정말 많은 후회가 있었다. 하도 후회를 하다보니 조금 이골이 나게 되면서 이 후회를 이겨낼 수 있는,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발견했다.

“나는 내가 좋다. 이대로의 내가 정말 좋다."

우울하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 마다 10번씩 마음 속에 주문처럼 되뇐다. 지금이야 결과를 알고 있으니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의 내가 에피메테우스같은 아둔한 자로써 보이지만, 당시에는 가지고 있었던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에게 그렇게 모질게 할 필요 없다. 정말. 나에게 따뜻한 연민을 가지기로 했다.

누구는 학창시절에 당한 왕따라는 경험을 단순히 힘들었던 트라우마로 덮어놓지만 누구는 그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원숙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터득한다. 같은 경험을 가지고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나는 미래를 보는 프로메테우스가 될 수도, 과거에 갇힌 에피메테우스가 될 수도 있다. 사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핵심적인 차이는 단순히 과거를 보느냐, 미래를 보느냐에 있지 않고 내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느냐, 과거에 머물러 있느냐에 달려있다. 기억속에 갇혀 과거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교훈삼아 현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다가올 좌충우돌 여러 난관들을 담담하게 또 씩씩하게 마주할 그 용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실수하고, 나도 계속 실수 할 것이기에, 과거의 나에 관대해져야 한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보고 "너는 실수 안하냐"라고 반론을 제기하면, 혹은 미래의 나를 보고 "그럼 너는 실수 안하냐"라고 따지면 할 말이 없다. 미래의 나도 결국 계속 실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항상 응원하고,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자. 실수 덩어리인 나를 좋아하고, 완벽하지 못한 나를 좋아하자.

"나는 내가 좋다. 이대로의 내가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