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계획도 잡혔겠다, 홍콩 이주 계획도 모두 확정됬겠다...이참에 출근 걱정 안하고 길게 여행 다녀올 수 있겠다 싶어서 야심차게 2주간 스페인 여행을 계획했다. 바르셀로나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남부를 거쳐 마드리드에서 끝나는 여정이다. 엄마가 스페인을 예전부터 가보고 싶어했거니와 스페인 남부는 나도 가본적 없는곳이라 이번 여행지는 스페인으로 정했다. 특히 숙소 선정에 대단히 많은 공을 들였는데 2주간 머문 모든 숙소 만족 100%라 아주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숙소에 관한 정보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다룰 예정.
사실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가 특히 명절이 되면 더더욱 힘들어했는데, 긴 명절 휴일동안 달리 무엇을 해야할지 어쩔줄 몰라하는 엄마를 보고 '이제 앞으로 명절은 그냥 무조건 어디 길게 여행가자.' 라고 내가 못박았다. 엄마가 유달리 명절에 외로움에 몸서리 치는 것은 팬데믹 이후로 갑자기 잘 안모이게 된 친척들 영향도 컸다. 아빠의 부재가 하필 코로나라는 대형 악재랑 겹치면서 원래 명절만 되면 모든 일가 친척 다 모여서 벅적벅적하던 것이, 그냥 한두해만 조용히 보내고 다시 모일줄 알았지만 자연스레 안모이게 되면서 쓸쓸함이 더욱 더해진것 같다.
이번 스페인 가족 여행 정말 많이 준비했는데, 25년 구정 연휴는 평일에 아름답게 자리잡은데다 월요일 임시공휴일까지 지정되는 바람에 내 퇴사일이 하루 당겨져서 더욱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꽁으로 생긴 연차 굳) 운좋게 대기 걸어둔 아시아나 비즈니스 표가 확정이 되어서 모아둔 마일리지도 방출할겸, 효도여행 컨셉 제대로 맞춰서 가게 됐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총 일정은 3박 4일.
1. 까사 바뜨요
2. 사그라다 파밀리아
3. 피카소 박물관
4. 구엘 공원
5. 구엘 저택
나는 한번 가본 곳들이 많지만 엄마는 처음와봤으니 효도여행 컨셉에 충실하기로.
엄마랑 2주간의 긴 시간을 농밀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엄마에 대해 모르는 면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한 평생 알아온 우리 엄마인데도 말이다. 원래 인간은 다면적이고,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평생 성장하는 존재인데 엄마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많은 것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시공간의 농밀함이라고 생각한다. 여행 중 시간은 내 일상의 24시간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인데, 2주간의 압축된 시간을 엄마랑 함께 보내다보니 엄마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된것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나와 엄마는 아빠가 아프면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 엄마에게는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것 같다. 건물 하나에 통째로 성경을 표현했다고 하니, 건물 곳곳에 서려있는 스토리가 더욱 감동적이었나보다. 내 경우는 그것보다는 좀 덜했는데, 처음 왔을 때 사실 눈물이 어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었지만 두 번째 방문은 아무래도 좀 덜하더라.
아무리 설명절이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바르셀로나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마주치는 아시아인은 거의 60% 확률로 한국인이었다. 당시 국외로 나간 한국인의 수가 역대 최대치였다고 하는데, 우리형 말로는 진짜 서울이 텅텅 비어서 한산했다고 하니...그럴법하다. 스페인 하나만 해도 이렇게 한국인이 많은데, 전세계 각지로 여행 나간 한국인을 전부 생각하면 ㅎㅎ..
<구엘 저택>
바르셀로나 일정 중 가장 마지막에 간 구엘 저택. 구엘의 평생의 후원자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구엘이 잠시 살았던 저택이다. 듣자하니 구엘 부인은 이 곳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해서 그리 길게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곳은 가우디의 건축물 중 관광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곳인데, 의외로 엄마의 원픽이었다. 역시 이런건 취향차가 있는것 같았는데, 구엘 저택은 당시 찐 부자가 살았던, 그 숨결이 그대로 타임머신 타고 느껴지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었달까. 이에 반해 첫날 간 까사 바뜨요가 좋게 말하면 신기한 집이고, 나쁘게 말하면 장난쳐놓은 것 같은, 뭔가 집같은 느낌은 좀 덜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엄청 좋았다.) 구엘 저택은 곳곳에서 고급스러움이 폭발하는데 관람 도중에 간간이 파이프 오르간이 자동으로 연주되어서 한층 감동을 더해주었다. 심지어 입장료도 다른데에 비해 저렴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대단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현시킬 수 있게 한 엄청난 팀워크에 있는데, 우리는 가우디라는 한사람만 기억하지만 그 뒤에는 사실 이 건물에 기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우디의 디자인을 실제로 실현시켜주는 목공, 석공, 대장장이, 가구장인 등을 비롯하여 상상초월 기이한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보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후원자까지. 유럽 다른 어느곳을 가도 없는 이런 독특한 건축물은 바르셀로나이기에, 그 시절이기에, 그런 팀워크와 넓은 커뮤니티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것이 바르셀로나만의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
<까사 바뜨요>
가우디가 사택으로 지은 건물 중 가장 유명한 건물.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의 수호 성인 조르디가 용을 잡고 공주를 구한다는 스토리를 담은 건물로 반드시 스토리를 알아야 전부 볼 수 있는 예술 작품이다. 해골부터 정강이뼈까지 인체의 각 부위 뼈를 형상한 외부 골조, 신의 작품인 자연에는 직선이 없고 모두 곡선이라는 그의 신앙심, 용을 잡고 흐르는 그 피로 장미가 피어났다는 것 까지 스토리까지 많은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건물이다.
다만 가격 정책이 좀 사악한데, 표 등급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좀 짜치는게 창구에서 사는 가격이 인터넷에서 사는 가격보다 훨씬 비쌌다. 나도 몰랐다가, 별 생각 없이 창구에서 표를 사려고 갔는데 뭔가 쌔함을 느꼈다. 일반적인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단체 중국인 관광객만 와서 표를 사는것이 아닌가. 이상했다. 관광객이 이렇게 많은데 왜 줄이 없지. 일단 표를 사지 않고 잠시 멈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니 온라인 실시간 구매가 가능한데 창구와 가격 차이가 꽤 났다. 역시 이 쌔함...무의식의 빅데이터랄까. 그자리에서 핸드폰으로 표를 구매하고 입장 줄을 섰다.
<구엘 공원>
이곳은 원래 공원이 아니었는데, 사업가였던 구엘이 주택 분양 부동산 사업을 벌인 곳이었다. 위치를 보면 상당히 외떨어진 산 등성이에 위치한 공원인데, 당시에 이 쓸모없는 땅에 주택을 근사하게 지어 부자들에게 팔아 고급 주택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다만 문제는 상하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직접 물을 길어와야 했고, 도심과 너무나 동떨어진 산등성이라 결과적으로 주택 분양 사업은 대폭망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 이후 팔리지 않은 집에 가우디가 상당히 오래 거주했고, 이후 바르셀로나 시가 이 부지를 구입하면서 공원으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당시 집이 딱 1채만 팔렸는데, 그 1채를 가진 집안이 아직도 대대로 집을 상속해오면서 구엘공원 안에 유일한 별장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집을 구매한 당시에는 속이좀 쓰렸겠지만...묵혀두니 결국 투자 대박이 되었다.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는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겪으며 무려 92세까지 장수한 사람인데, 그때문에 일생에 거친 그의 작품 변천사는 엄청나다. 젊은 시절 작품부터 우리가 흔히 아는 피카소 후기 작품까지 방대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젊을 시절 작품은 우리가 흔히 아는 작품과는 전혀 다른 정통 인상파 화풍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림을 정말 잘그린다 ㅋㅋ...못그려서 큐비즘 추상화로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좋은 경험. 노년에는 도예 작업을 많이 했는데, 작업하는 동영상을 보니 본인이 다 하는것은 아니고 도제들이 어느정도 만들어둔 도자기에 슥삭슥삭 초스피드로 작품 마무리. 애초에 팔기위한 예술품을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해놓은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 해변가>
글래스고에서 유학하던 시절 친하게 지냈던 스페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마침 몇년 전 부터 바르셀로나로 이주해서 산다고 하길래 잠시 짬을 내서 만나러 갔다. 유학 시절 정서적으로 참 힘든 시절이었는데, 이 친구 신세를 참 많이 졌다. 이 친구는 극 E의 성향으로 매주 주말마다 각종 이벤트를 주최하는데다 워낙 마당발이라 여기저기 소소한 이벤트가 끊이질 않아서 항상 같이 초대해주었는데, 여러모로 당시 큰 도움이 되서 정말 고마운 친구다.
저녁을 함께 먹고 바르셀로나 해변가를 같이 걷는데 하늘 색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것이 아닌가.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하늘. 잊지 못할것 같다.
3박 4일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그라나다로 향한다.
'여행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여행 (25/01/28) ③ - 코르도바 & 스페인 렌터카 썰 (0) | 2025.03.19 |
---|---|
스페인 여행 (25/01/26) ② - 그라나다 (0) | 2025.03.18 |
대만여행 (2023.Feb) - 4-5일차 (대만식 조식, 베이터우 온천, Li Yuan 현지인 맛집) (0) | 2023.03.06 |
대만여행 (2023.Feb) - 3일차 (진천미) (0) | 2023.03.06 |
대만여행 (2023.Feb) - 2일차 (Tamed fox, 타이베이 시립미술관, ACME 카페, 샹그릴라 마르코폴로 라운지, Studio 9) (0) | 2023.03.05 |